2024. 12. 18. 08:45ㆍ나의 가족 이야기
나는 요즘 내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고성이 오가고 소송이 난무하는 그래서 그 누구 하나 상처를 입지 않고 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삭막한 세상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배려하는 그런 세상이다.
엄마로 인해 나는 병원으로 가는 새로운 길들을 알아간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지루함이고, 그래서 한 길로 다니기보다는 여러 길을 선택한다.
오늘은 A, 내일은 B, 그다음 날은 C 등등... 그래도 매일은 그 많아 보이는 선택지조차 몇 개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 길들에 있는 카페에 가끔 들러 음료를 사 먹는다.
예쁜 벽화가 그려져 있는 길을 걸어 내려오면 인적이 드문 곳에 젊은 사장님 두 분이 운영하는 소금빵 카페가 있다.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예뻐서 그 가게에서 소금빵을 열 개를 샀다. 사장님의 즐거워하셨고 그 모습에 나도 즐거웠다.
그 빵을 엄마가 있는 병원에 가져다주었다.
스테이션에 간호사가 없어서 간병인분께 전해드렸다.
즐거워하셨다.
그 모습에 나 또한 즐거웠다.
간병인분의 키가 작으셔서 식사를 거는데 항상 불편했다.
집에 굴러다니던 쇠붙이가 있어 걸이봉에 달아 놓으니 식사주머니를 달기가 훨씬 수월했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이런 세상이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그런 세상을 살아내려고 한다.
그러려면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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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생이 엄마의 병원비를 이야기하면 나에게도 책임을 지라고 했다.
무슨 책임을 지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내 말처럼 엄마를 퇴원시켰다면 엄마는 지금도 버젓이 걸어 다니고 있을 거다. 지금 그들이 감당하는 병원비를 엄마에게 매달 따박따박 주었더라면 엄마는 고마워했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면 사과는 물론 천문학적인 합의금을 물어주고 평생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안타까움이나 반성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기들이 내는 병원비만 크게 보이는 것 같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빠도 그때 내 말을 들었어야 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때 큰언니와 동생이 강력하게 주장하여 그 말을 들었던 것에 후회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무엇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인지... 그때 엄마를 도둑질해 시술을 시킨 것이 자기들이면서...
또한 동생은 남의 상표를 무단으로 몇 년을 사용하고도 사용료를 내지 않고도 참으로 뻔뻔했다.
카페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남의 상표로 등록된 물건 하나를 인터넷에 잘못 올렸다가 200만 원의 합의금을 물어주어야 한다고.
자기가 나에게 져야 하는 책임은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이 있는 지도 모르는 것인지.
상표침해는 비친고죄라서 내가 고소를 하지 않아도 수사기관에서 수사할 수 있다. 7년 이하의 징역 1억 원 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것은 고의나 과실이 없을 때이다. 동생은 내가 상표를 쓰려면 사용료를 내거나 사용료를 내지 않으려면 상표를 내리라고 한 이후에 법인을 냈고 무권리자인 동생은 타인들에게 그 상표를 쓰게 했다. 그것은 고의에 해당되고 우리나라 법에 의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에 해당되므로 최대 3배의 손해액의 배상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그런 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지...
자기가 남의 상표로 수십 억을 벌 때는 나 몰라라 하더니 자기가 내는 몇십만 원은 아까워하며 책임운운하는 동생의 모습이 참으로 어이없다.
그냥 가족이라 참는 거고,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건데.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것과 다 알면 서도 죽을힘을 다해 참는 것 중 어느 것이 어려운 것인지...
내가 죽을 것 같이 힘들 때 그들은 날 모른 척했고, 오히려 날 죽이려고 하고, 내가 가진 것을 빠았으려 했다.
한때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형제복이 있다며 자랑했던 나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다.
그렇게 생각했던 그들의 실체를 낱낱이 알고 나니 한때 나의 꿈이 가족사업이었으나 좌절되었던 것에 오히려 감사함을 느낀다.
그런 그들이 뻔뻔하게 나에게 와서 되지도 않는 말을 한다.
감사는커녕 나에게 계속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한다.
왜 이 대목에서 엄마가 생각나는 건지...
그들은 항상 무언가 필요하면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그들의 필요를 얘기했다.
엄마는 안타까운 마음에 항상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나는 엄마나 다른 가족에게 무언가를 요청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요청했을 때 거의 모두 흔쾌히 나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먼저 제안이나 요청을 하는 적이 더 많았다.
미국에서도 금식을 할 때 헬렌아줌마가 물을 가지고 내가 사는 집에 찾아왔던 일이 있고, 나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교회도 안 다니던 중국인 할아버지 내외가 날 찾아와서 나의 필요를 채워주겠다고 하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베푼 선행에 고마워하며, 무엇으로든 갚아주려 하거나, 나의 선한 마음에 동참해주려고 하는데 내 형제들은 무슨 밑 빠진 독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