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2025. 1. 31. 17:14나의 가족 이야기

오늘 세브란스에 가서 엄마 검사를 몇 가지 했다. 엄마가 세브란스에서는 눈을 오래 뜨고 있었다. 힘들었을 텐데. 대략 네 시간의 외출. 그렇게라도 답답한 요양병원을 벗어나 세상 구경을 해서 엄마의 마음에 조그만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한다.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혼자 왔는지, 형제가 몇 인지 물었다. 내가 혼자 버겁게 다니는 모습을 보고 여자 의사 선생님이 검사하는 곳을 모두 동행해 주셨다. 감사했다.

엄마에게 뇌출혈이 온 날이 생각났다. 혼자서 버겁게 CT실까지 의료진을 따라다녔다. 심장혈관 내과에서 본관까지 갔다. 나는 하염없이 울며 아빠에게 와 달라고 전화했다. 아빠는 주치의가 며칠 후에 오라고 했다며 전화하지 말라고 소리치고는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CT 결과를 기다리며 눈물을 흘리던 내게 휴지를 건넨 것은 가족이 아니라 의료진이었다. 오늘도 여러 가지 검사실을 다니던 나의 버거움을 덜어준 것은 가족이 아니라 의료진이었다. 요양병원 사람들과 다른 환자보호자들도 잘 다녀왔냐고 어떻게 됐냐고 묻는다. 1년이 넘는 시간, 엄마에게 조금 편하게 해줄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쁜 나머지 흥분해서 말했다. 그분들에게도 우리 엄마와 같은 기적이 있기를 바란다.
 
돈밖에 모르는 가족들은 모른 척이다. 참 대단한 목사, 박사, 선생, 사장이다. 가짜들. 큰언니는 자기들도 엄마를 살리려고 스텐트 시술을 했다고 했다. 큰언니가 나에게 자기들이 오면 찌그러져 있으라고 했다고 했더니, 친구가 "다른 가족들도 엄마를 살리려고 했다면서. 그럼 매일 엄마를 보러 가는 너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했다. 큰언니의 말이 진실이라면 친구의 말이 맞다. 아빠가 예전 교회 집사님들한테 내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라고 했다고 전해 들었었다. 나는 "그 말이 진실인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요"라고 했다. 오늘 그의 말이 또다시 거짓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평생을 그렇게 거짓으로 살아왔다. 끼리끼리는 참으로 사이언스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좋은 사람인 척, 말만 번지르르.

평생 기도로 눈물을 흘린 병상에 있는 엄마를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 같고, 목사인 아빠를 보면 하나님이 없는 것 같다. 자신의 본분을 잊고 병원에 와서 나에게 욕을 하고, 때리려고 하고, 내 눈을 빼버린다고 했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자 그 자리에서 가방을 들고 나갔다. 나한테도 그러는데 평생 엄마한테는 더 했다. 엄마는 그 모든 폭력과 착취를 견뎠다. 엄마는 아빠와 이혼을 원했다. 아빠는 이혼을 회피했다. 나는 아빠가 자기 건물 때문에 법원에 다니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뇌출혈이 왔을 때 이렇게까지 부탁했다. 아빠가 재산을 지키는 것만큼 엄마의 마지막을 그렇게 지켜달라고. 하지만 아빠는 내 부탁을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엄마를 면회오는 것인지, 나에게 집을 비우라고 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때가 몇 번 있었다. 내가 집 때문에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인가 하고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사람의 법으로도 평생을 희생한 사람에게 그렇게 하면 지탄을 받는다고 했다. 하나님의 법도, 세상의 법도 아닌 본인의 이상한 법을 행하며 그것이 이상한 줄도 모른다.

여럿이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이 쉽다며 나에게 작은 언니를 도우라던 큰언니는 여럿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쉽다는 것을 나와 엄마에게 몸소 실천하고 있다.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빠에게서 만이 아니다. 2023년 추석 명절이 오기 전 큰언니는 작은 언니 소원은 임대아파트에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그리고 스텐트 시술을 앞두고 큰언니는 자기가 있는 진천에 전세를 구해주겠다며 나에게 그 집을 비우라고 했다. 세브란스에서 퇴원을 해서 엄마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겠다고 했더니, 내가 먹을 것을 사러 나간 사이 작은 언니가 엄마에게 우리 집에는 살림하는 사람이 없어서 안 된다고 극구 말리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엄마에게는 작은 땅이 하나 있다. 내가 드라마 공부를 한다는 것을 아는 엄마는 그 땅을 나에게 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평생 누군가에게 줄 생각만했지, 자신을 챙기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괜찮으니 그 땅을 팔아서 엄마가 먹고 싶은 것 사먹고 엄마 좋아하는 병원에 다니라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너 하나뿐이라고 했다. 엄마는 그 땅을 내게 주려고 했고, 큰언니와 아빠가 말렸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큰언니가 나에게 5백을 보냈다. 아빠가 5백을 주었다. 큰언니가 통장을 확인해보라고 했을 때 나에게 2천을 빌려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너의 셈법은 항상 그 모양인가 하고 따져 물었다. 알고 봤더니 아빠에게 1천 5백을 주라고 했는데, 나에게 5백만을 주었고 1천 만원은 자기가 챙겼다. 원래 이런 사람이 목사인 우리 아빠다.  그들에게 그런 사람의 행동은 눈감고 넘어갈 대상이고, 나의 것은 악착 같이 빼앗으려 한다. 이런 일이 있고 더이상 나에게 집을 빼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엄마에게는 초기 치매가 있었다. 엄마가 없어졌다고 하는 것은 통장, 도장, 신분증이었다. 모두 은행이나 재산과 관련된 것들이다. 평생 자신의 것조차 자신이 쓸 수 없었던 엄마는 끝까지 그러한 것들을 지키려 했다. 치매 판정을 받았다. 큰언니가 엄마를 데리고 다녔다. 큰언니는 차에서 엄마에게 "내 팔자야"를 외쳤다고 한다. 물론 나도 좋은 딸은 아니었다. 그런 엄마를 이해하려고 하기는커녕 엄마가 조금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큰언니는 나에게 내가 엄마와 그렇게 싸웠냐고 했다. 나는 엄마와 싸웠다. 아무도 엄마와 상대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사람이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무력하게 되고 시들어간다. 나는 엄마를 살아있는 존재로 대했다. 원래 엄마와 딸은 많이 싸우는 대상들이니까... 그래서 나는 큰언니에게 물었다. 너희 집은 천국이었는지. 그래서 그렇게 방치한 것인지. 엄마는 의지처가 필요했다. 아빠가 의지처가 되어줄 거라 생각했고, 박사를 받는데 힘을 써준 엄마는 큰언니가 의지처가 되어 줄 거라 생각했다. 세브란스에서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큰애는 날 버렸고, 둘째와 넷째는 날 미쳤다고 해."

스텐트 시술 후 엄마는 뇌출혈이 왔고, 엄마 같은 사람이 스텐트 시술을 하는 거라며 퇴원 전 날 시술을 감행한 의사를 고소하겠다고 큰언니한테 카톡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몇 분 후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도 저렇게 돼서 언니도 힘든데 왜 그러냐고. 그들의 말이 선의라고 생각했다.

내가 전원서류 중 하나인 연명치료 거부서에 사인을 미루자 신경외과 주치의 선생님이 나와 면담을 하자고 했고, 나의 가족은 모두 왔다. 그 자리에서 엄마의 호흡기를 떼는 것에 대해 물었고, 선생님은 그것은 법적 윤리적으로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전원이 되었고  1년 3 개월이 지난 지금 엄마는 기적적으로 의식이 많이 회복되어 호흡기를 떼고 다른 조치를 취해야 하는 시점이 왔는데 다른 가족들은 모르쇠이다. 과연 그들이 엄마를 살리려고 스텐트 시술을 했다는 말이 왜 거짓처럼 느껴지는 걸까?

나는 가족내에서 일어나는 다수가 휘두르는 폭력과 착취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 가해진 일들이 엄마에게도 일어났다. 그들은 그것이 정의라고 한다. 참으로 이상한 정의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 어느 법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그들이 이용하는 것은 외톨이 전략이다. 엄마는 혼자밖에 없었고, 매번 아빠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고 또다시 아빠를 불러 아빠에게로 돌아가는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엄마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을 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세상이 그 끔찍한 아빠밖에 없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너무 슬퍼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차라리 남편이 없었더라면... 엄마는 더욱 양질의 풍성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평생을 가난한 목사의 사모로 산 것도 모자라 지금 저렇게 병상에 누워있다. 

나는 그래서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보게 되었다.  이제 화도 안 난다. 그런 사람들이었고, 그런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일 것이니... 개과천선을 하지 않는 이상...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나는 아빠에게 엄마의 외진이 잡혔으니 세브란스로 신분증을 가져와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나의 요청인지 병원의 요청인지 물었다. 나의 요청이라고 했다. 아빠는 나에게 엄마의 병원비를 다 감당하라고 했다. 나는 평생을 희생한 엄마에 대한 예의도 없는지 물었다. 그리고 내가 다른 형제들에게 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빠는 오지 않았고 나는 더 이상 참지 않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