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28. 01:55ㆍ카테고리 없음
재미있는 사실은 INTJ는 무신론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의 존재가 그 어떤 것보다 확실하게 믿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가장 위급했을 때 나는 기도로 살아났다.
나는 그것을 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
만약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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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40년 30년 지기들에게 나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그들의 반응은 하나 같이 "네가 언니들 얘기 하는 거 처음 들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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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엄마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 6개월은 의식이 있는지 없는 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주변 사람들은 "차라리 말씀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하며 안타까워 했다.
그 다음 6개월은 의식이 돌아왔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요양병원 의사의 자신의 판단이 무의미하다는 판단의 유보와 최소 의식 상태인지의 확인의 기간이었다.
지금은 혼란이 걷힌 완전한 확신의 단계이다. 이것이 내가 겪은 엄마와의 의식 회복에 관한 지난 1년 간의 여정이다.
엄마의 상태 회복을 보면서 나도 많이 회복되었고, 삶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 같다.
생명은 신비롭다.
생명...
그것보다 더 고귀한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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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괴롭힘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자행되는 것 같다. 뭐 가족간에도 그러니 말 다했지만. 기상캐스터가 괴롭힘을 당했다는 유서를 남겼다는 보도를 보았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치열한 경쟁의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은 불행인 것 같다. 미국에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 살았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다. 하늘을 보고,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고, 새들이 날아왔다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밀물과 썰물을 보고, 꽃이 피고 지는 것들을 보노라면 그 조화가 얼마나 놀라운지... 그런 것들을 보는 것이 행복이었는데...
예전에 성취지향적으로 살았던 때가 있다. 헬스장에 갔다. 그때 카운터에 앉아 있던 20대 초반으로 보였던 앳된 청년이 그곳에서 라커룸 열쇠를 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나에게 그녀의 삶은 한심해 보였다. 그래서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여기서 이렇게 있는 것이 아깝지 않아요?" 그녀는 대답했다. "아뇨, 사람은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거잖아요." 나는 나의 잣대로 그녀를 재단해 보았고, 그 범주를 벗어나는 그녀가 한심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기준에서 벗어난 삶도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듯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충만한 행복을 느낀다면 모든 삶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