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민들레 by. 신영복

2024. 4. 24. 09:41카테고리 없음

이상은 추락함으로써 싹을 틔우는 한 알의 씨앗입니다
비록 추락이 이상의 예정된 운명이라 하더라도
이상은 대지에 추락하여야 합니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민들레는 슬픔입니다

===============


고목 명목

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워집니다
고목이 명목인 까닭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나무와 달라서
나이를 더한다고 하여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며
젊음이 언제나 신선함을
보증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노가 원숙이
소가 신선함이 되고 안되고는
그 연월을 안 받침하고 있는
사색의 갈무리에 달려있다고 믿습니다

어제의 반성과 성찰 위에서
오늘을 만들어 내고
오늘의 반성과 성찰 위에
다시 내일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사색의 갈무리가
우리를 아름답게 키워주는 것입니다

=============


대면

풍요보다는 궁핍이
기쁨보다는 아픔이
우리를 삶의 진상에 마주세웁니다
그리고 삶의 진상은
다시 삼엄한 대립물이 되어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대면하게 합니다

자기자신에 대한 냉정한 인식은
비정한 것이기는 하지만
빈약한 추수에도 아랑곳없이
스스로를 간추려 보게 하는
용기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아픈 기억을 잊는 것은 지혜입니다
아픈 기억을 대면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


미완성

"어린 여우가 강을 거의 다 건넜을 때
그만 꼬리를 적시고 말았다. 끝마치지 못한다."
세상에 완성이란 없습니다
실패가 있는 미완이 삶의 참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삶은 반성이며 가능성이며 항상 새로운 시작입니다

===============

사실과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