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잘 한 선택과 잘 한 일

2024. 11. 21. 08:39카테고리 없음

20대 중반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하버드 박사님 밑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때 나는 많은 콘퍼런스에 참여했다. 
전문적인 이야기들을 들으며,
대학에서 4년 공부했던 무역보다
그때 일했던 경험으로 FPD에 대해 더 잘 알았던 것 같다.
내가 맡았던 일은 기사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때 어느 신문 기사의 내용을 확인하느라 KAIST 교수님께 전화를 했다. 
나의 소속을 밝히고 기사의 내용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 물었다. 
그분은 나의 질문에 대해 대답해 주시는 대신 질문을 하셨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일인지 알고 있나요?"
"...."
어떻게 그 통화가 마무리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 통화를 기점으로 딱 일주일 고민하고 그 일을 그만두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대표님께 감사한다.  
나의 관점과 의견을 본인의 것으로 가로채지 않고 인정해 주신 점과 나의 결정을 존중해 주신 것과 내가 힘이 들 때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해 주셨던 점에 감사한다. 

그 후 나는 번역을 시작했고, 논문 번역을 오랫동안 하고 있다. 처음부터 논문 번역을 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회사의 보고서, 브로셔, 매뉴얼, 작품 해석, 전시관 설명 등을 번역하다가 어느 순간 논문으로 번역이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고, 그 후로 계속 논문을 번역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그때 그 일을 그만둔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때의 선택이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고 싶었고, 번역 중에서 논문 번역은 대한민국의 학자들의 논문이 해외로 나가는 교두보이지 않은가? 고맙게도 내가 번역한 논문들이 해외 저널에 실렸다는 소식을 전해주신다. IEEE, SPINGER, APA, UNESCO JOURNAL 등등등... 그런 소식을 접해 들을 때마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학자분들의 개인적 성취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학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인류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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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 인생의 가장 잘한 일은 엄마를 매일 보러 가는 일이다. 요양병원으로 옮긴 지도 벌써 일 년이 되어간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공교롭게도 오후에 엄마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주간보호센터 버스가 두 대 서 있다. 지체 장애인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차량이다. 그들이 나와 그 차에 오를 때 도와주는 도우미들이 여럿 있다. 그들에게 그 사람들은 어떤 의미일까? 그냥 남이고 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그들이 인간이기에 인권이 있어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이지 않은가?
 
나에게는 엄마이다.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한 사람.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베풀어준 사람. 
내가 내가 될 수 있게 터전을 만들어 준 사람이 나의 엄마이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1998년 환율은 2천 원인 상황에서 미국에 공부하라고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시 미국에 공부하러 가겠다고 하면 미쳤다는 말을 하며 막았을 상황인데도, 우리 엄마가 먼저 제안해서 나를 미국으로 보냈다. 

나는 그런 우리 엄마가 정말 대단해 보인다. 가끔 내가 우리 엄마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난 가족들에게 항상 빚진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다. 엄마를 매일 보러 가는 일은 나에게 가치를 지켜내는 일이다.  희생, 가족, 의리와 같은 것들... 그리고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다. 그것들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엄마는 평생을 기도로 살았다. 엄마를 기억하면 엄마가 잠을 잔 시간보다 기도를 한 시간이 더 많다. 내가 진정한 하나님을 알게 된 것도 엄마 덕분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을 붙들고 믿음을 지켰던 모습이 엄마의 모습이다.

엄마는 나에게 가족들을 도우라고 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큰 언니가 박사를 할 수 있게 끝까지 도왔고, 작은 언니가 학원을 했을 때도 무급으로 도왔고, 동생에게 돈 한 푼 받지도 않고 브랜드를 빌려주었다. 아빠가 손을 다쳤을 때도 형부를 불러 병원에 싣고 간 사람이 엄마이다.  나에게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면 나중에 재미없다는 식으로 아빠는 말하지만, 나는 지금 이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에게 최선을 다한 엄마를 지켜내는 것이 나에게 받은 것들은 깡그리 잊고, 자신들이 주어야 할 것은 주지도 않으며, 없는 것을 만들어 모함하고,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무리 지어 해코지를 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노루 한 마리가 다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노루의 가족들이 다 나와 노루를 둘러싸고 있고, 한 마리는 망을 보고 있었다. 비단 짐승들도 그런데 쓸모 없어지면 버리는 것이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가족들에게 들인 모든 시간과 돈 중 지금 엄마에게 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